바보같은 아이디어
Everesting에 대해 처음 들었을때 저는 정말 말도 안되는 컨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9,029ft(약 8,848m)를 한 번의 라이딩으로 올라간다구요? 말도 안됩니다!
그리고, 산타 로사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곳의 참사와 모든 가족들이 집을 잃고 떠돌게 된 상황을 보고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그것이 떠올랐습니다: Everesting!
GIANT USA의 대표로서 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라이딩하거나, 그룹 라이딩에 참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도전을 위해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했습니다. 더 헌신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Savage Saturdays”라고 부르던 것을 시작했습니다. 언덕 위를 반복해서 오르면서 하루 종일 높고 큰 클라이밍에 집중한 라이딩이었습니다. 제가 Savage Saturday 라이딩을 시작했을 때, 제 첫 목표는 수직 6,000ft를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8,000ft가 되었고, 10,000ft, 15,000ft, 그리고 하루에 20,000ft를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날들을 보내면서 저는 저의 세부적인 영양 섭취 상황을 조절하게 되었고, 저의 단체 훈련에 약간의 수정을 한 후, 5월 22일을 저의 Everesting day로 정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완벽한 파트너
Everesting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후, 저는 가능한 최고의 자선 단체와 보조를 맞추고 싶었습니다. 몇 번의 조사를 하고나서 저는 산타 로사에 있는 King Ridge 재단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족들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었으며, 제가 모금한 기부금의 100%가 비영리 단체에 기부될 것이었습니다.
몇 주가 지나고, 소문이 퍼졌습니다. 지원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기부를 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놀라운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장 좋은 조언은 아직 해가 떠있을 때 라이딩을 끝낼 수 있도록 도전을 일찍 시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새벽 3시가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
마침내 5월 22일이 되었고 저는 해가 뜨기 몇 시간 전 긴장을 한 채로 집을 떠났습니다. 몇 달 전 저는 제 고향인 캘리포니아 주 Livermore의 근처에 있는 Lake Del Valle를 저의 Evereting 도전 장소로 선정하였습니다. 1.5마일의 언덕은 600ft까지 올라갔고,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계속해서 그곳에서 연습했습니다.
그 언덕을 오르는 54번의 랩 중 첫 번째 랩은 새벽 3시 15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겠지만 저와 함께 그곳에서 함께 라이딩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5명의 라이더가 더 나타났습니다. 그 중에는저의 오랜 친구인 Kent Langendorf가 있었고, 그는 그 날 20,000ft(약 6,096m)를 오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 날 오직 2번의 랩만 홀로 올랐고, 이는 제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침 라이딩은 춥고 어두웠지만 그 날의 끝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제 계획은 10번의 랩마다 (약 2.5시간 마다) 차에 멈춘 후, 스트레칭을 하고, 음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에너지를 빠르게 약간 회복하고 다시 라이딩을 시작하는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새벽이 다가왔고, 제 고도는 누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동행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속해서 랩을 반복하였습니다. 10, 20, 30번째 랩까지는 모두 좋았습니다. 정말 재미있었고, 열심히 노력했으며, 언덕 위를 질주했습니다.
40번의 랩을 돌았을 때 저지를 갈아 입을 시간이 왔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제게 기부를 했고,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자전거로 돌아갔을 때 상황은 약간 흐트러졌습니다. 46번째 랩이 되었을 때 저는 정말 힘들었지만, 간신히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47번째 랩에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앉아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손이 너무 아려서 핸들바를 잡는 내내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아무 일도 없다는듯 포커 페이스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48번째 랩은 끔찍하게 힘들었고,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저와 함께 4명의 라이더가 달리고 있었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머리를 똑바로 내리고, 제 아래로 지나가고 있는, 언덕 위로 저를 이끌어 주는 흰색 선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48번째 랩을 올라갔고, 이제 3,000ft의 클라이밍만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까맣게 탔지만, 그럴 위험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48번째로 길을 내려오면서 저는 머리 속의 생각의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49번째 랩을 다시 시작할 때, 실제로 울지는 않았지만 울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가 그 하루 중 제가 가장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너무 많은 고통과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갔습니다. 저는 제 행동이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저를 돕기 위해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그들에게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제게 계속 이야기를 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은 저를 계속 올라가게 했고, 마침내 49번째 랩이 끝이 났습니다.
이제 4번의 랩만 남았을 때, 저는 계획을 깨고 차에 멈춰서 치킨 부리또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칭을 했으며, 물통을 바꿨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행동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일단 다시 자전거에 기어 올라갔을 때, 제 영혼이 되살아났고 기운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세요, 제 몸은 여전히 매우 지쳐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다시 현재로 돌아왔고, 이제 다시 도전할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3번의 랩은 빠르게 지나갔고, 공기 중에 이미 축하의 기운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Kent Langendorf, Dave Dalton, Rick Lawton, 그리고 Ray Prevost와 저를 지원해주는 헌신적인 사람들과 함께 저의 Everesting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필요한 고도를 채운 후에 이제 승리를 위한 마지막 한 번의 랩이 남았습니다. 혹시나 데이터를 전송하였을 때 부족함이 생기지 않도록 약간의 고도를 더 누적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힘든 일이었고, 이 날은 “TCR Tuesday”라는 용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이 이벤트에 참여하고, 기부하고, 후원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멋진 공동체의 친절과 관대함은 저를 더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영원히 여러분의 서포트에 감사할 것입니다. 돕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http://go.rallyup.com/527b0b에서 기부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의 기금 모금 노력에 큰 영향을 준 Aaron Casados, Beau Grant, Dave Brady 그리고 Hop DeVine에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모든 사진은 Ray Prevost이 제공하였습니다.